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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도전을 선물하고 싶은 51년생 크리에이터, 액티브 유조입니다.

72세에 졸업한 MBA도, 49세에 시작한 사업도, 62세에 수상한 머슬매니아도, 해외 여행도 어렵던 1978년  열심히 돈을 모아 떠난 프랑스 유학도 나의 인생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저의 도전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도전의 경험이 더 큰 도전을 하는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 마음이 원하는 도전을 고민하는 인생의 후배들에게 제 삶의 이야기가 자극과 영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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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ory

​꿈을 향해 파리까지
날아갔던 20대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나의 삶은 최고로 멋지게 만들고 싶었다. 미대교수를 꿈꾸던 나는 졸업 직전 1972년 입사한 대한항공에 다니며 열심히 돈을 벌어 대학원에서 염색 미술을 배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괜찮은 삶이었지만 나는 늘 새로운 세상이 궁금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 유학을 가면 교수의 꿈을 빨리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혼기를 놓친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고, 해외로 나가기 어려웠던 당시 해외 유학은 더더욱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도움과 추천으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어 6년간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1978년 12월 파리행 티켓을 샀다. 

 

파리 유학은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었다. 스테인드 글라스, 회화 등을 배우니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힘든 줄도 모르고 작업을 했다. 문득 찾아오는 향수병은 견딜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바로 짐을 싸 81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엄마,
밤에는 화가였던 30대

내 나이 27세, 숭의여자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어 기뻤지만 일할 때 느껴지는 유리천장에 답답해질 때가 많았다. 서른이 넘으니 거세진 결혼 압박에 못 이겨 선을 봤는데 나의 커리어를 응원해주는 남자를 만나 31세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였던 데다 남편도 독자라 서둘러 1982년 큰 아이, 1984년 작은 아이를 연이어 낳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몇 시간씩 앉아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아이가 울면 달려가야 했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일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나의 삶도 사랑하는 아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낮에는 아이를 보고 아이가 잠에 들면 밤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어떻게든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싶어 틈틈이 중고등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결혼한 지 8년 후, 아이들도 크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다시 대학 강사로 나갈 수 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스케치북 삼아
사업을 한 40-50대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40세가 훌쩍 넘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즈음,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해서 관심을 갖고 컴퓨터를 해보는데 모니터 화면이 꼭 스케치북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지 말고 컴퓨터로 뭔가를 작업하면 좋겠다 싶어 화실에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풍경화를 주로 그리던 때라 컴퓨터로 예쁜 풍경 사진들을 찾기 시작했다. 풍경이 멋진 곳에는 꼭 고급 리조트와 호텔이 있었다. 풍경 사진과 함께 리조트 사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부도 할 겸 홈페이지를 만들어봤는데 하루에도 100통씩 문의 전화가 왔다. 이거다 싶어 1999년 호텔, 리조트 예약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화실은 회사 사무실이 되었다.

 

모두가 은퇴를 생각하는 49살에 20대 유학 시절로 돌아간 듯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에 힘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입소문이 나자 대기업에서도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3-4년쯤 지나니 B2B 비중이 50%가 넘었고 국내 비즈니스 여행 업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선두 기업이 되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머슬 매니아
60대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 되고, 어엿하게 성장한 자녀들의 도움을 받으니 내가 없어도 회사가 돌아갔다. 100세 시대에 나는 고작 62살이니 체력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할 거면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에 머슬 매니아 대회를 덜컥 신청했다. 

 

파릇파릇한 20대 직업 운동인들이 참가하는 대회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6시간씩 6개월 동안 열심히 운동했다. 최종 수상자 6명 중 60대는 내가 유일했다. 그런데 상을 탄 기쁨도 잠시, 몸이 아픈 곳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무릎 MRI를 찍어보니 연골이 잘게 쪼개져 있었다. 과도한 운동이 원인이라고 했다. 

 

내 나이에 맞는 운동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운동과 관련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해서 국내와 국제 자격증 6개를 땄다. 20대와 비슷한 강도로 운동하려면 6배의 노력이 든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잔소리가 아니라
진짜 도움이 되기 위한
MBA 도전, 70대

딸과 아들도 어느덧 다 커서 사업을 시작했고, 어엿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나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잔소리로 받아들였다. 잔소리가 아닌 도움이 되려면 MBA를 졸업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69세 나이에 MBA에 문을 두드렸다. 

 

나이 때문에 서류 지원조차 안 되는 곳도 있었다. 서류 전형에 통과해서 면접을 가면 나보다 나이가 어린 교수들이 면접관으로 앉아  "나이가 어린 자기도 힘든데 정말 공부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의지와 열정을 보여준 면접 끝에 마침내 한양대 MBA에 합격했다. 

 

20-30대도 힘들어한다는 MBA 수업을 쫓아가느라 한 학기에 한 번씩은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결국 72세에 졸업을 해냈다. 그렇게 나의 잔소리는 자녀들에게 어엿한 조언과 자문이 되었다. 

나의 도전을 선물하는
크리에이터

지금 뒤돌아보니 그동안 내 인생에는 참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려도 해볼 만했던 도전 덕분이었다. 수많은 도전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가져다 준 인생의 가장 값진 선물이기도 하다. 

 

그 선물 같은 이야기를 도전의 용기가 필요한 인생의 후배들과 나누고 싶었다. 세상의 시선과 상관없이 그래도 도전해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또 다른 도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70세에 SNS를 하는 법을 배웠다.  

 

이왕이면 가장 나답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복잡하고 어려워야 더 멋진 작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의 일상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순간을 심플하게 그려내는 것이 좋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파란 가을 하늘, 길가에 핀 꽃, 나를 향해 달려오는 강아지를 볼 때 느껴지는 가깝고도 아름다운 선물 같은 것이라는 걸 그림으로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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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70대 유튜버 ‘액티브 유조’의 평생 현역으로 사는 법“, 전성기 매거진, 2021

"5060을 위한 어느 유튜버의 특별한 나이들기", 지데일리, 2020

TV <대한민국 1% 건강 청문회> 16회, MBN,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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